연애/남녀 | 일제강점기 의외의 사실 조남일녀 vs 조녀일남?



2025-03-30 09:17


식민지 시절이였지만 의외로 조선남자-일본여자조합인 일명 조남일녀 부부의 수가 조녀일남 부부의 수랑 거의 비등비등했다.

봉건잔재가 남아있어 상향혼이 기본이던 시절임에도 다수의 여자가 자발적으로 피지배국의 아내로 시집가던 현상은 제국주의 역사상 유래가 없던 일.

...본래 지도 또는 정복 민족의 남자가 피지도 또는 피정복 민족의 여자를 처로 삼는 것이 지배관계의 원칙이지만 내지에서 이 관계는 반대... 내지에 거주하는 조선인이 대부분 조선의 하층민임에도 불구하고 지도민족인 내지인 여자와 성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은 것은 한편으로는 내지인 여자를 처로 삼음으로써 정복감을 만족하는 데 있는 것... 내지인 여자가 조선인의 성정을 알지 못하고 그들을 내지인으로 오인하거나 또는 그 감언에 속아서 자포자기의 상태가 되는 것을 나타낸다...

- 대동아건설민족인구자료 14: 내지재주 조선인 출산력 조사연구-.

일본측도 이에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는지 국가 차원에서 일본 여자들이 악독한 조선인들한테 가스라이팅 당해서 그런거임 이라고 나름의 분석까지 했지만 글쎄올시다.....

1928년엔 아예 어용단체인 상애회를 중심으로 '내선결혼 소개부'를 신설한다
목적은 '일남-조녀' 커플을 적극적으로 양성하는것

.....도쿄 혼조구에 본부를 둔 상애회가 1928년에 내선결혼 소개부를 신설하자, 종래 내선결혼이라고 하면 거의 조선인 남자에게 내지인 여자가 시집가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상애회에서는 선인여성으로 하여금 적극 내지인 남자에게 시집가게 하기 위해 힘쓴다고 보도되었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도 조남일녀 커플이 조녀일남 비율보다 오히려 더 높다는 식의 인식이 자리잡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 일본 민중들의 생각은 어땠을까? 국가간의 우열이 극명하던 제국주의 시대에 절대 곱게 보진 않았을 것이다.

요즘 일본인 여자가 요보(조선인의 멸칭)의 부인이 되는 경향이 있는데 뭐가 좋아서 요보의 부인이 되는 건지 정말 바보 같은 이야기다. 요보의 부인이 될 바에야 차라리 창녀라도 되는 게 낫지 않은가?

-경성의 어느 중국요리점에서 일본인 손님이 한 발언-



그렇다고 이런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는지 2차대전이 터지고 일본 남성이 부족해지자 이런 현상은 더 심해져 42년엔 조남일녀 커플이 조녀일남 커플의 10배를 상회했다.



이 때 시집온 일본인들 상당수는 해방 이후에도 한국에 정착하여 살아왔다. 논문 ‘재한일본인 처의 생활사’(1999년 김응렬)에 따르면 해방전까지 한국에 시집온 일본여성은 5천명이였으며 1977년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1500명 정도 남아있었다고 한다.

1952년 일본은 한국에 시집간 일본 여성들의 국적을 소멸시키면서 입국 자체가 막혀버렸다고 한다.
1969년 한일수교가 재개됨에 따라 한국정부는 일본으로 송환을 원하는 재한일본인 처들을 송환했고 절반정도가 귀국을 택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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